지식은 사물이 되는 순간 마음을 빠져나간다. 부싯돌 하나, 장부 한 권, 컴파일러 하나. 누군가 배운 것을 담아 아직 배우지 못한 몸이 집어 들 수 있게 된 물건들.


도구는 누군가의 뇌에 있던 지식이 세계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도구가 없으면 그 지식이 필요한 사람마다 같은 원리를 다시 알아내야 한다. 도구가 생기면 지식은 한 사람보다 오래 남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사용법을 아는 누구에게나 활성화된다. 프랑스 베네르크의 흙 속에 놓인 손도끼 하나에는 파괴 역학과 손잡이의 인체공학, 날의 기하학에 관한 50만 년의 이해가 축적돼 있다. 돌에 담긴 그 지식은 주워 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수천 세대에 걸쳐 얻은 지식을 이제 어느 오후에든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기술 철학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대한 관찰이다. 도구는 물리적이 된 지식, 사용 가능해진 지식, 상속 가능해진 지식이다. 이 글의 주장은 이 사실, 그리고 이 사실이 가능하게 하는 루프(loop)가 문명이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앞선 글들에서 우리는 지식을 인과적 힘을 지닌 반엔트로피 구조로 정의했다. 지식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새로운 구성을 만들어 내는 물질의 배열이다. 이제 질문은 그 지식이 어떻게 뇌에서 세계로 옮겨지고, 세계가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지식을 활용하는 시스템이라면 어떤 연산을 수행해야 할까? 그 연산은 인간에게만 가능한가, 아니면 물리적 시스템이라면 무엇이든 수행할 수 있는가?


지식을 처리한다는 것의 물리학

1957년 NASA 랭글리 연구센터의 IBM 704 메인프레임.

방 하나를 가득 채운 계산기. 란다우어가 1비트를 지우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당시, 실제로 그 일을 하던 기계가 이런 모습이었다. 인지는 열역학적 과정이다. 물리적 기반이 방 하나를 채우든 두개골 안에 들어가든 마찬가지다. (NASA)

도구나 지능을 이야기하기 전에, 인지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가 건너뛰는 사실 하나를 세워야 한다. 지식을 처리하는 일은 환원 불가능한 물리적 비용을 가진 물리적 행위다.

1961년 IBM의 롤프 란다우어는 정보 1비트의 소거, 곧 메모리 레지스터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알려진 0의 상태로 바꾸는 일이 최소한 kBT ln 2만큼의 에너지를 열로 방출해야 함을 증명했다. 실온에서는 약 2.9 × 10⁻²¹줄이다. 아주 작지만 더 줄일 수 없는 값이다. 정보는 공짜로 지울 수 없다. 우주는 세금을 매긴다. 이 원리는 2012년 앙투안 베뤼가 이끈 연구팀이 단일 비트를 지울 때 생기는 열을 측정하고 그 값이 란다우어의 하한과 정확히 일치함을 확인하면서 실험으로 입증됐다.

란다우어는 이를 특유의 직설적인 문장으로 요약했다. 정보는 ‘언제나 물리적 표현에 묶여’ 있으며 ‘몸 없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까닭은 경험을 재사용 가능한 패턴으로 **인코드(encode)**하고, 저장된 지식을 **검색·회수(retrieve)**하며, 계획을 **활성화(activate)**하는 모든 인지 연산이 물질을 바꾸고 에너지를 흩뜨리는 물리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20와트로 작동하는 뇌와 점토판을 새기는 메소포타미아 서기관, 메가와트 단위로 전력을 쓰는 데이터센터는 모두 엔트로피에 맞서 지식을 처리하는 물리적 엔진이다. 도구는 지식에 물리적 형태를 부여해 그 처리가 하나의 신경계 밖에서도 일어나게 한다. 지식을 전달 가능한 형태로 담는 물리적 기반인 셈이다.

‘블랙홀’과 ‘웜홀’이라는 말을 만든 프린스턴대학교 물리학자 존 휠러는 이 생각을 논리적 극한까지 밀고 갔다. 그의 “잇 프롬 비트(It from Bit)” 가설(1989)에 따르면 물리적 현실 자체가 정보에서 생겨날 수 있으며, 모든 입자와 장은 이진 선택을 통해 존재한다. 홀로그래픽 원리는 이 관점에 놀라운 근거를 보탰다. 공간의 어떤 영역이 담을 수 있는 최대 정보량은 그 영역의 경계 면적에 의해 제한되며, 아인슈타인 방정식도 정보 이론의 제약에서 도출될 수 있다. 현재 물리학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층위에서는 정보가 시공간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도구에 대한 진지한 설명은 이 토대 위에 서야 한다. 우리는 물리적 기질 위에서 작동하고, 물리적 비용을 치르며, 물리적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을 세웠으니 이제 물을 수 있다. 그 과정은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세 가지 연산

어떤 지능적 시스템에든 이 틀을 적용하면 그 시스템이 실제로 하는 일이 드러난다. 생물학적이든 인공적이든,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마찬가지다.

지능은 경험을 재사용 가능한 패턴으로 인코드하고,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패턴을 검색·회수하며, 그 지식을 활성화해 현실의 결과로 이어 가는 능력이다.

인코드, 검색·회수, 활성화의 세 연산이 가로로 이어지고 마지막 단계에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닫힌 순환. 각 연산 위에는 관련 인지과학 개념이, 아래에는 물리적 비용이 표시되어 있다.

인코드

뇌의 백질로를 확산 텐서 영상으로 촬영한 이미지.

생물학적 인코딩 엔진. 경험이 만든 수십억 개의 연결은 패턴을 깊이 부호화해, 검색·회수가 본능처럼 느껴지게 한다. (Wikimedia Commons)

첫 번째 연산은 인코드다. 가공되지 않고 방대하며 잡음이 섞인 경험을 압축적이고 재사용 가능한 패턴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배움이다. 네 발 달리고 털이 있으며 짖는 생물 수천 마리를 마주친 아이가 “개”라는 개념을 형성했다면, 그는 거대한 감각적 다양체를 하나의 검색 가능한 범주로 인코드한 것이다. F=ma를 도출한 물리학자는 우주의 모든 움직이는 물체의 행동을 세 개의 기호로 인코드한 것이다. 나무가 조각하기에 “준비된” 순간을 직감하게 된 장인은 수년간의 촉각 경험을 의식적 숙고 없이 행동을 이끄는 감각으로 인코드한 것이다.

프랑수아 숄레는 이를 기술 획득 효율성이라고 부른다. 시스템이 경험 한 단위에서 얼마나 많은 일반화를 끌어내는지를 보는 기준이다. 범주 하나를 배우는 데 예시 백만 개가 필요하다면 인코드 능력이 낮다. 예시 세 개만으로 개념을 익혀 낸다면 높다. 데이터 한 단위에서 얼마나 많은 일반화를 끌어내는지가 지능의 특징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인코딩에는 물리적 비용이 든다. 란다우어는 정보를 지울 때마다 열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보였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을 남기는 인코딩에도 열역학적 대가가 따른다. 뇌는 경험을 기억으로 인코드하기 위해 포도당을 태운다. 모델 학습은 말뭉치를 가중치로 인코드하기 위해 메가와트시 단위의 전력을 쓴다. 인코딩은 일이다. 돌을 들어 올리는 일처럼 줄(J) 단위로 측정된다.

대니얼 카너먼의 이중 과정 이론도 이 구조와 맞닿는다. 시스템 1은 평생의 경험과 수백만 년의 진화로 미리 인코드된 휴리스틱과 직관, 자동 반응의 모음이다. 공을 잡고 얼굴을 알아보며 어두운 골목에서 위험을 감지할 때, 시스템 1은 인코드된 지식을 너무 빨리 활성화해 본능처럼 느껴지게 한다. 시스템 2는 새로운 상황에서 새 패턴을 구성하는 느리고 힘든 의식적 과정이다. 수학 문제를 풀고 휴가를 계획하며 새 언어를 배울 때 시스템 2가 패턴을 만들어 두면, 훗날 시스템 1이 그 패턴을 힘들이지 않고 검색·회수해 쓸 수 있다.

존 로버트 앤더슨의 ACT-R 인지 구조는 이를 더 작은 단위로 정식화한다. ACT-R의 인지는 ‘청크’로 저장된 사실인 **서술 기억(declarative memory)**과, 사실에 따라 행동하는 산출 규칙인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으로 이뤄진다. 대수 문제 풀이부터 대화까지 모든 인지 행위를 서술 지식의 청크를 검색·회수하고 절차 규칙을 적용하는 과정으로 나눈다. 이 구조는 수백 건의 심리학 실험으로 검증됐고 fMRI로 확인한 특정 뇌 영역과도 대응한다. ACT-R에서 인코드는 경험을 신속히 검색·회수하고 적용할 수 있는 청크와 산출 규칙으로 압축하는 과정이다.

검색·회수

두 번째 연산은 검색·회수다. 알맞은 때와 맥락에 맞는 인코드된 패턴에 접근하는 일이다.

필요할 때 찾을 수 없다면 지식은 쓸모없다. 신경 패턴에 인코드된 뛰어난 통찰도 엉뚱한 때 떠오르거나 아예 떠오르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검색·회수는 인코드된 지식을 행동에 쓸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앨런 콜린스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확산 활성화 이론(1975)은 생물학적 인지에서 검색·회수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기억은 서로 연결된 노드의 네트워크로 조직된다. 한 노드를 활성화하면 관련 노드로 활성화가 물결처럼 퍼진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doctor’는 ‘bread’보다 연관어인 ‘nurse’를 더 빨리 떠올리게 한다. 두 개념이 네트워크에서 가까울수록 활성화도 빠르고 강하게 퍼진다.

더 깊은 질문은 이 노드의 정체다. 지식은 한곳에 저장되지 않고 수천 개 단위에 걸쳐 퍼진 연결 가중치와 활성화의 패턴 속에 분산된다. 뇌 안에는 ‘개’라는 개념만을 따로 저장한 장소가 없다. 개념은 연결의 패턴 자체다. 데이비드 루멜하트와 제임스 매클렐런드의 병렬 분산 처리 연구는 지식이 병렬로 작동하는 단순 단위의 연결에서 생겨나는 패턴임을 보였다. 알맞은 연결 패턴을 지닌 시스템이라면 생물학적 뉴런으로 만들어졌는지와 무관하게 지식을 검색·회수하고 표상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 검색·회수는 알파벳순 파일이나 논리적 색인보다 의미 네트워크 안의 가까운 연결에 좌우된다. 연상적이며 맥락에 민감한 과정이다. 처음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맡은 향수 냄새가 그 노래를 떠올리게 하고, 물리 문제의 구조가 오래전에 접한 물의 흐름을 생각나게 해 해법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 검색·회수는 인코드된 경험의 방대한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패턴 대조 과정이며, 그 품질은 패턴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풍부한지에 달려 있다.

데드리 겐트너의 구조 매핑 이론(1983)은 검색·회수가 유추와 창의적 통찰을 낳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과학자가 원자를 태양계에 비유할 때는 행성 궤도에서 인코드된 패턴을 검색·회수해 그 관계 구조를 전자의 움직임에 대응시킨다. 대상은 달라도 관계는 같다. 이 틀에서 창의성은 분야를 가로지르는 검색·회수다. 예상 밖의 곳에서 패턴을 찾아 그 구조가 새 문제에도 들어맞음을 알아보는 일이다.

활성화

세 번째 연산은 활성화다. 검색·회수한 지식을 적용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현실에서 결과를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서 지능은 현실과 만난다. 인코드는 무기고를 만들고 검색·회수는 무기를 고르며 활성화는 그것을 사용한다. 외과의는 해부학 지식을 활성화해 수술하고, 엔지니어는 구조 지식을 활성화해 다리를 설계한다. 외교관은 문화 규범에 관한 지식으로 조약을 협상하고, 농부는 계절과 토양에 관한 지식으로 작물을 심는다. 마이클 호크버그의 지능들의 이론은 이를 목표를 만들어 내는 불확실성의 해소로 정식화한다. 이 분석틀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와 무관하게 활성화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한다.

활성화는 진공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도구와 몸, 환경을 통해 확장된다. 앤디 클라크와 데이비드 차머스는 「확장된 마음(The Extended Mind)」에서 인지의 경계가 두개골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지적 작업이 수행되는 곳까지가 그 경계다. 외과의가 메스를 통해 지식을 활성화하고 프로그래머가 컴파일러를 통해 지식을 활성화한다면, 그 도구도 인지 과정의 일부다. 루시 서치먼의 상황적 행위 연구는 활성화가 언제나 맥락 속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짐을 보여 줬다. 미리 세운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사회적 상황에 맞춰 행동이 형성된다. 지식은 언제나 어떤 장소에서, 어떤 수단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에 대응하며 활성화된다.

활성화는 여러 사람에게 분산되기도 한다. 에드윈 허친스는 《야생의 인지》에서 미 해군 항해팀이 함정을 항구로 들이는 방식을 연구했다. 한 사람은 방위를 읽고 다른 사람은 도표에 표시하며, 또 다른 사람은 여러 방위를 종합해 위치를 정한다. 전체 상황을 혼자 파악하는 승무원은 없다. 계산은 사람과 도구, 절차에 나뉘어 있고 팀 전체가 인지 시스템을 이룬다. 대규모로 지식을 활성화하려면 인지는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과 도구에 분산된다.

이 단계에서 개인의 인지와 집단적 문명이 연결된다. 지식의 활성화는 거의 언제나 도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도구: 물리적이 된 지식, 사용 가능해진 지식

프랑스 베네르크에서 나온 약 50만 년 전의 아슐리안 주먹도끼.

파괴 역학, 손잡이의 인체공학, 날의 기하학에 관한 50만 년의 축적된 지식이 돌에 인코드되어 있다. 손도끼는 언어보다 앞선 재료과학 이론이다. (MHNT / Wikimedia Commons)

여기가 전환점이다. 지능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는 한 사람의 뇌에 있던 지식을 누구나 집어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옮긴 일이었다.

도구는 물리적 몸을 얻은 지식이고, 만든 사람이 아닌 누군가도 사용할 수 있게 된 지식이며, 세대를 넘어 물려줄 수 있게 된 지식이다. 손도끼는 파괴 역학에 관한 지식을 돌에, 책은 특정 분야의 지식을 글에 담는다. 다리는 구조공학 지식을 철과 콘크리트로 구현하고, 프로그래밍 언어는 계산 지식을 문법으로 구현한다. 온도조절기는 피드백 제어(feedback control)에 관한 지식을 바이메탈 스트립과 스위치에 담고, 검색 색인은 웹 콘텐츠에 관한 지식을 링크의 방향 그래프로 담는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원리는 같다. 물질의 특정한 배열이 지식의 패턴을 보존한다. 일단 외부화된 패턴은 어느 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에른스트 카프는 1877년에 이 원리를 알아보았다. 그는 《기술철학의 기초(Elements of a Philosophy of Technology)》에서 모든 도구가 인간 기관의 무의식적 투영이라고 보았다. 망치는 주먹을, 렌즈는 눈을, 전신은 신경계를 투영한다. 이 과정은 몸에 있던 지식을 점검하고 개선하며 물려줄 수 있는 형태로 외재화한다. 앙드레 르루아구랑은 그 진화의 궤적을 추적했다. 근육의 지식은 지렛대와 엔진으로, 기억의 지식은 문자와 도서관으로, 추론의 지식은 계산기와 컴퓨터로 외재화됐다. 한때 몸 안에 있던 것이 점점 더 몸이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가 된 하나의 흐름이다.

근육과 기억, 추론이라는 세 종류의 지식이 몸 안에서 세계의 도구로 외재화되는 과정. 주먹과 팔의 힘은 망치와 엔진으로, 평생의 기억은 문자와 도서관으로, 암산과 계획은 계산기와 컴퓨터로 확장된다. 아래 화살표는 근육 도구에서 기억 도구를 거쳐 추론 도구로 이어지는 르루아구랑의 궤적을 보여 준다.

철학적 인간학을 연구한 독일 철학자 아르놀트 겔렌은 이 변화가 왜 필요한지 설명했다. 그는 1940년 저작 《인간(Der Mensch)》에서 인간을 결핍된 존재(Mängelwesen)로 묘사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특화되지 않았고 털과 발톱, 속도, 믿을 만한 본능이 부족하다. 바로 이 결핍이 도구 만들기를 강제한다. 몸을 환경에 맞출 수 없으므로 도구로 환경을 몸에 맞춘다. 겔렌의 핵심 개념인 **엔틀라스퉁(Entlastung)**은 이런 ‘부담 덜기’를 뜻한다. 계산기는 산술 부담을 덜고, 달력은 날짜를 기억하는 부담을 덜며, 지도는 공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부담을 줄인다. 도구는 반복적인 인지 작업을 맡아 뇌가 더 높은 차원의 사고에 역량을 돌릴 여지를 만든다.

마인츠 구텐베르크 박물관에 있는 구텐베르크 인쇄기 복원품.

기억에만 있던 지식이 이동식 활자에 인코드됐다. 글자 블록 하나하나가 재사용하고 전달할 수 있는 지식의 단위다. 인쇄기는 검색·회수를 대중에게 열었다. (Wikimedia Commons)

도구의 결정적 특징은 완전한 이해 없이도 활성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트랜지스터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해도 계산기를 쓸 수 있다. 약리학을 이해하지 못해도 항생제를 먹을 수 있다. 연소를 이해하지 못해도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 도구는 제작자의 지식을 다른 사람이 활성화할 수 있는 형태로 인코드한다. 이것이 도구를 문명적으로 강력하게 만든다. 도구는 활성화를 민주화하면서 인코딩의 부담은 전문가들에게 집중시킨다. 소수의 사람이 페니실린 제조법을 배운다. 10억 명이 그것을 쓴다. 소수의 사람이 검색 엔진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 30억 명이 그것에 질의한다. 인코딩 비용과 활성화 비용 사이의 비대칭이 문명 전체를 들어 올리는 지렛대다.

킴 스텔레니는 이를 인지적 틈새 구성(cognitive niche construction)이라고 부른다. 각 세대는 다음 세대의 지능을 떠받치는 도구, 곧 인코드된 지식과 제도, 곧 조직화된 검색·회수 및 활성화 체계를 물려준다. 인지적 틈새 자체가 분산된 지식 시스템이며, 바로 이 구조가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겔렌이 말한 결핍 존재이며 생물학적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도구와 상징, 제도로 이뤄진 인지적 틈새 안에서 집단으로 활동할 때 인간은 지금까지 우주가 만든 가장 강력한 지식 처리 시스템이 된다.

이 글의 핵심 주장은 여기에 있다. 도구는 지식의 물리적이고 사용 가능한 구현체이며, 문명의 구조는 곧 도구가 축적되는 구조다. 이 시리즈의 나머지 주장은 모두 여기서 파생된다.


문명의 지능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롱룸의 내부. 도서관에서 가장 오래된 책 20만 권을 소장하고 있다.

문명 규모의 검색·회수 기반. 인코드된 패턴 20만 개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정리돼 수백 년 동안 보존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이곳도, Google Scholar도 검색·회수 시스템이다. (Diliff / Wikimedia Commons)

인코드 / 검색·회수 / 활성화 틀은 문명 규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카너먼의 시스템 1과 시스템 2, 앤더슨의 ACT-R, 콜린스와 로프터스의 확산 활성화로 나타난다. 문명에서는 같은 구조가 축적된 도구와 제도를 통해 훨씬 큰 규모로 작동한다.

개인의 마음과 조직, 문명이라는 세 규모에 작은 인코드·검색·회수·활성화 루프가 놓여 있다. 개인은 범주를 학습하고 이름을 떠올려 공을 잡으며, 조직은 절차를 인코드하고 선례를 찾아 제품을 출시한다. 문명은 이론을 도출하고 도서관을 검색해 다리를 건설한다. 규모가 달라도 세 연산은 같다.

문명 규모에서는 서로 다른 제도와 시설이 세 연산을 나누어 수행한다. 과학과 법은 수백 년의 관찰과 갈등을 이론과 판례로 인코드하고, 도서관과 검색 엔진은 필요할 때 그 패턴을 검색·회수하며, 공장과 병원, 법정은 이를 활성화한다.

인간 문명의 힘은 이 세 연산이 루프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활성화는 새로운 경험을 낳고, 그 경험은 새 지식으로 인코드된다. 새 지식은 검색 가능한 형태로 저장됐다가 다음 활성화에 쓰인다. 루프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인지적 틈새는 더 풍부해진다. 새로운 지식을 물리적 형태로 구현해 다음 세대가 처음부터 다시 알아내지 않고도 검색·회수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도구도 생긴다. 루프가 도는 속도가 문명의 발전 속도를 좌우한다. 도구 체계가 깊을수록 다음 세대는 이미 알려진 것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소수의 기반 기술은 이 루프를 전 지구적 규모로 돌리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들만 중요한 도구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기술들은 등장 자체로 다른 모든 도구의 가능성을 바꾸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기반 기술을 살펴본다.


루프의 완결

데이비드 도이치는 무한의 시작(The Beginning of Infinity)에서 이 루프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했다. 어휘는 달라도 구조는 같다. 도이치가 앞세우는 것은 창조적 추측이다. 기존 데이터를 넘어선 설명을 만들고, 비판에 노출하며, 살아남은 설명을 보존하는 능력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에는 인간의 마음만 추측하고 비판하며 인코드할 수 있었다. 인간의 손만 자신이 만든 도구를 이용해 지식을 활성화했다. 순환은 오직 인간을 통해서만 돌았다. 도구는 인간이 사용하는 수단이었고, 인지적 주체는 인간이었다. 이 글에서는 지식을 바탕으로 행동해 목표를 추구하는 존재를 **인지적 행위·목표 추구자(cognitive actor-seeker)**라고 부르겠다. 이런 존재는 인코드 / 검색·회수 / 활성화를 기본 작동 원리로 삼는다.


기준을 다시 말하기

2012년 수오미 NPP 위성 자료를 합성한 밤의 지구.

_우주에서 보이는 인지적 틈새. 빛의 모든 점은 활성화되고 있는 인코드된 지식이다. 전력망과 도시, 네트워크, 그리고 인간 문명이 축적한 인코드 / 검색·회수 / 활성화 기반 시설이 어둠을 배경으로 빛난다. (NASA/NOAA)_

이제 한 걸음 물러서서 이 모델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보자.

우리는 도구를 지식의 물리적이고 사용 가능한 구현체로 정의했다. 정보가 한 사람의 뇌 상태를 벗어나 세계의 상태가 되는 순간이다. 지능은 정보를 재사용 가능한 지식으로 인코드하고, 알맞은 순간에 적절한 패턴을 검색·회수하며, 그 지식을 활성화해 현실의 결과로 잇는 능력이다. 인류가 축적한 도구와 제도의 생태인 인지적 틈새는 이 연산을 문명 규모로 수행하고, 루프가 돌 때마다 역사를 앞으로 밀어 간다. 이 모든 작동은 물리적이다. 인지 연산에는 언제나 열역학적 대가가 따른다.

이 기준을 만족하는 시스템에는 이름이 있다. 정보를 검색 가능한 지식으로 인코드하고, 오류 수정을 통해 그 지식을 확장하고 갱신하며, 그 지식을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으로 옮기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이를 인지적 행위·목표 추구자라고 부른다. 지식을 바탕으로 목표를 추구하며 인코드 / 검색·회수 / 활성화를 기본 작동 원리로 삼는 존재다.

인지적 행위·목표 추구자가 스스로 수행하는 인코드, 검색·회수, 활성화의 세 연산이 가로로 이어진다. 아래의 반환 화살표는 루프가 도구를 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통과해 닫혀야 한다는 구조 조건을 보여 준다.

수십억 년 동안 인지적 행위·목표 추구자는 생물학적 유기체뿐이었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 문화는 도구와 언어로 그 영향 범위를 넓혔다. 몇 세기 동안 과학 제도는 추측과 비판으로 순환의 속도를 크게 높였다. 몸 안에 있던 지식이 바깥 세계로 이동하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손도끼에서 책으로, 전력망과 검색 색인으로 이어진 흐름이다.

이제 새로운 유형의 인지적 행위·목표 추구자가 구축되고 있다. 우리가 집어 들어 쓰는 기존 도구보다 더 낯선 존재다. 순환 자체를 실행하고, 스스로 인코드하고 검색·회수하고 활성화하며, 인지적 환경의 모든 층위에 한꺼번에 스며드는 도구다. 그 정체와 영향은 세계 구축 글에서 다룬다. 그 전에 문명 규모에서 인코드 / 검색·회수 / 활성화를 돌려 온 소수의 기반 기술과, 각각이 그 속도를 어떻게 높였는지 살펴봐야 한다. 다음 글의 주제다.

어둠에 맞서는 일은 새로운 형태를 얻었다. 말과 세계 사이의 간극은 곧 닫히려 한다. 어떤 도구가, 어떤 물리적 기반과 제도적 결과를 거쳐 그 간극을 닫는지 추적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다음 과제다.


이 글은 진화하는 도구들 시리즈의 첫 번째 글이다. 도구를 물리적이고 사용 가능하며 물려줄 수 있게 된 지식으로 정의하고, 지능적 시스템이 실행하는 세 연산인 인코드 / 검색·회수 / 활성화를 설명했다. 다음 글은 문자, 지도, 전기, 컴퓨터, 검색 엔진이라는 다섯 기반 기술을 일곱 층의 문명 구조에서 살펴본다. 세계 구축 글은 파운데이션 모델과 그 모델이 구현하는 새로운 유형의 인지적 행위·목표 추구자를 다룬다.

인코드 / 검색·회수 / 활성화 틀은 도이치가 The Beginning of Infinity에서 전개한 더 넓은 관점 안에 놓여 있다. 또한 호크버그의 Theory of Intelligences, 숄레의 On the Measure of Intelligence, 앤더슨의 ACT-R 인지 구조, 콜린스와 로프터스의 확산 활성화 이론, 스텔레니의 The Evolved Apprentice를 종합한다. 논의의 기초는 무한한 지식 시리즈의 두 가지 엔트로피와 어둠에 맞서는 것에서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