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무질서를 향해 간다. 그 흐름에 맞서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지식(knowledge)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이론이 없다.

지식이 머릿속에 담아 두는 관념이 아니라 문명을 결속하는 물리적 힘이라면 어떨까?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2022년에 근적외선으로 포착한 창조의 기둥.

독수리성운 안의 별 탄생 영역 — 별들이 태어나고 결국 죽게 될 가스와 먼지의 기둥. 우주는 무질서로 가는 길 위에서 아름다움을 만든다. (NASA/ESA/CSA/STScI)

우주에는 우리가 마땅히 더 두려워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저절로 내버려두면, 모든 것은 무너진다. 쇠는 녹슨다. 건물은 허물어진다. 별은 타버린다. 열역학 제2법칙은 물리학에서 가장 깊은 비대칭이다. 시간이 방향을 갖는 이유이고, 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것과 그 조각들이 다시 당신 손으로 뛰어오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는 이유다. 우주는 가차 없이 최대 무질서를 향해 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기에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다. 언젠가 우리를 해체할 바로 그 법칙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조직된, 원자들의 일시적 배열로서 말이다. 그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원자 배열 80억이 모여 문명을 이룬다. 유리와 강철로 지은 구조물 안에서 살고,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빛의 속도로 기호를 주고받는 문명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어둠에 맞서는 힘은 무엇인가?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철학을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같은 답에 이른다. 그리고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이전 글에서는 그 답을 지식 이라고 불렀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쉬웠다. 어려운 일은 지식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쌓이며, 왜 때로 사라지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지식의 지속적인 성장이 왜 지구에서 가장 중대한 과정일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35억 년: 분자

DNA의 나선 구조를 드러낸 엑스선 회절 이미지.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1952년 사진 51.

슈뢰딩거의 예측을 확인해 준 이미지. 결정화된 DNA를 엑스선에 노출해 얻은 사진 가운데 하나가 생물학을 영원히 바꾸었다. (사진 51)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는 1944년에 올바른 질문을 던졌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열역학 제2법칙이 모든 것에 요구하는 붕괴를 어떻게 피하는가? 그의 답은 이랬다. 유기체는 환경에서 질서를 끊임없이 끌어들이며 음의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를 먹고 자신을 유지한다. 구조화된 에너지를 받아들여 내부 질서를 유지하고, 무질서는 주변으로 내보낸다. 생명은 제2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다만 주변에 무질서를 밀어내며 국소적으로 버틸 뿐이다.

슈뢰딩거는 유전 정보(information)가 ‘비주기성 결정’에 저장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규칙적인 골격과 정보를 운반하는 불규칙한 염기서열을 함께 지닌 구조다. 왓슨과 크릭보다 9년 앞서 DNA의 핵심 특징을 묘사한 셈이다.

DNA는 가장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지식이다. 환경에 관해 35억 년 동안 쌓인 정보가 분자 구조 안에 암호화되어 있다. 그 정보가 없었다면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낮았을 변화, 곧 유기체를 만드는 일을 일으킨다. 지식은 활성화되었을 때, 우주가 무질서로 향하는 기본 궤적만으로는 생겨나지 않을 변화를 만들어 내는 정보다. 유전체도 지식이고 페니실린 제조법과 궤도역학 이론도 지식이다. 환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흰개미가 만든 환기 구조도 마찬가지다.

호주 리치필드 국립공원의 대성당 흰개미집.

자신들이 무엇을 지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유기체들이 해낸 대성당 규모의 공학. 지식은 구조 안에 있지, 어떤 흰개미의 마음속에 있지 않다. (Wikimedia Commons)

마지막 예가 중요하다. 대니얼 데닛은 이를 ‘이해 없는 유능함’이라고 부른다. 설계자 없는 기능적 설계, 아는 주체 없는 지식이다. 다윈은 그 방법을 보여주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맹목적 변이와 선택적 보존은 어떤 정신도 구상한 적 없는 기능적 복잡성을 쌓을 수 있다. 진화는 그 결과를 유전체에 기록하는 정보 처리 과정이다. 지식에 의식은 필요하지 않다. 물리적으로 구현되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면 된다.

카를 포퍼는 이것을 세계 3(World 3)으로 개념화했다. 객관적 지식, 곧 이론과 수학적 구조, 제도의 세계다. 물리적 세계나 주관적 경험과 구별되는 영역이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실제로 중력파를 탐지하기 수십 년 전부터 그 존재를 예측했다. 그 지식은 누구의 머릿속에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방정식 안에는 이미 들어 있었고, 발견되기만을 기다렸다.


300년: 구성자

포퍼의 가장 야심 찬 계승자인 데이비드 도이치는 지식을 다른 물리 구조와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무한의 시작》(2011)에서 전개하고 키아라 말레토와 함께 구성자 이론(Constructor Theory)으로 정식화한 답은 이렇다. 지식은 구성자(constructor) 다. 일단 물리적으로 구현되면 그 구현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경향을 지닌 정보다.

DNA는 주변 환경을 이용해 또 다른 유기체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물리적 구현을 이어 간다. 과학 이론도 일단 이해되면 책과 교육을 통해 전승되며,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도록 돕는다. 구성자란 변화를 일으킨 뒤에도 같은 변화를 다시 일으킬 능력을 유지하는 모든 것이다. 촉매, 효소, 컴퓨터, 기술을 익힌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구성자 이론이 주는 통찰은 이것이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변화는 거의 모두 실현되기 위해 지식을 필요로 한다.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사건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입자만 있는 우주와 유기체·도시·문명이 있는 우주를 가르는 것은 지식 이다. 말레토가 표현했듯이, 지식을 담은 존재자만이 지식 없이는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낮은 변화를 지속할 수 있다.

진짜 지식과 단순한 믿음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도이치의 기준은 좋은 설명이다. 설명력을 잃지 않고서는 세부를 쉽게 바꿀 수 없는 설명이 좋다. 계절을 데메테르의 슬픔으로 설명하는 그리스 신화는 무엇에든 맞도록 조정할 수 있다. 반면 지축의 기울기는 설명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바꾸기 어려움’이라는 기준은 작동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지식과 어떤 형태로 바꾸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갈라놓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물리 구조와 달리, 지식에는 독특한 회복력이 있다. 여러 인스턴스에 구현되어 있다면, 그중 하나가 파괴되어도 살아남는다. 책은 불탈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의 지식이 다른 책, 다른 마음, 다른 제도 안에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지속된다.

단, 지식을 운반하는 네트워크가 임계 규모 아래로 줄어들지 않아야 한다.


10,000년 전: 소실

배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호주 본토와 떨어진 태즈메이니아의 위성 사진.

물 200킬로미터. 고립 1만 년. 한 문명 전체의 기억에서 불 피우기, 뼈 도구, 추운 날씨용 의복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NASA)

조지프 헨릭이 제시한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태즈메이니아다.

약 1만 년 전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고립되자, 4천 명가량의 주민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복잡한 기술을 조금씩 잃었다. 뼈 도구, 낚싯바늘, 추운 날씨에 입는 옷, 불씨 없이 불을 피우는 기술까지 사라졌다. 사람들이 덜 지능적이 되어서가 아니라, 인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련자가 너무 적어 문화 전승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를 보완하지 못했고 지식은 세대에 걸쳐 닳아 없어졌다. 오세아니아 사회 전반을 보면 인구 규모는 기술의 복잡성을 예측한다. 집단이 클수록 전달 경로가 다양해져 일부 경로가 끊겨도 다른 경로로 손실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헨릭은 《성공의 비밀》(2015)에서 이것이 우리 종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문화적 종’ 이다. 개인으로는 평범하지만 집단으로는 비범하다. 우리의 비결은 개인의 지능보다 정확도 높은 문화 전승에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고, 세대에 걸쳐 개선을 축적하며, 어느 한 사람도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개선이 되돌아가지 않도록 복잡성을 한 단계씩 쌓는 능력이다.

집단적 뇌에도 물리적 기반이 있다. 앙드레 르루아구랑은 그 전체 궤적을 추적했다. 근육에 담긴 지식은 도구로, 기억에 담긴 지식은 문자로, 추론에 쓰이는 지식은 계산으로 외부화되었다. 킴 스테렐니는 이를 인지적 틈새 구축이라고 부른다. 각 세대는 다음 세대의 지능을 떠받칠 압축된 지식의 세계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이 래칫도 거꾸로 풀릴 수 있다. 지식은 자라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한 문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래칫을 계속 앞으로 돌게 하는가?


1750년: 루프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의 증기 양수기 기술 도면.

전달 가능해진 지식: 명제적 지식과 처방적 지식을 동시에 실어 나르는 기술 도면. 누군가 대기압을 이해했기 때문에 엔진은 개선되었다. 도면은 그 이해가 창조자보다 오래 살아남도록 했다. (Wikimedia Commons)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엘 모키르는 평생 이 질문을 연구했다. 그가 세운 틀은 유용한 지식을 둘로 나눈다. **명제적 지식(propositional knowledge)**은 자연 현상과 사물이 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다. **처방적 지식(prescriptive knowledge)**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내는지, 곧 기술에 관한 지식이다. 모든 기술은 모키르가 말한 명제적 지식의 인식적 토대 위에 놓인다.

1750년 이전의 기술은 대부분 빈약하거나 아예 없는 인식적 토대 위에 놓인 처방적 지식이었다. 대장장이는 야금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강철을 단조했고, 농부는 토양 화학을 모른 채 윤작했다. 진보는 가능했지만 느리고 우연에 좌우됐으며, 시간이 갈수록 개선의 폭도 줄었다. 어떤 기술이 왜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체계적으로 개선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모키르는 이를 ‘산업 계몽주의(Industrial Enlightenment)‘라고 부른다. 대략 1700년부터 1800년까지 명제적 지식과 처방적 지식이 양의 피드백 순환(feedback loop) 안에서 서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대기압을 이해하면서 증기기관을 개선했고, 탄소 함량을 이해하면서 더 나은 강철을 만들었다. 이해가 기술을 낳았다. 기술은 새로운 질문을 끌어냈다. 질문은 이해를 깊게 했다. 순환은 거듭 돌았고 멈추지 않았다.

송나라, 아바스 칼리파국, 고대 로마처럼 혁신이 폭발했던 문명도 결국에는 정체했다. 유럽에서 일어난 혁신만은 스스로 이어지는 흐름이 되었다. 왜였을까? 모키르의 답은 문화적 통일성과 결합한 정치적 분열이다. 수십 개의 경쟁 국가가 인재를 두고 다퉜고, 이단적인 사상가는 다른 관할권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들은 발견에 보상하고 생각을 자유롭게 유통하는 공통의 지식망, ‘문인 공화국(Republic of Letters)‘에 참여했다. 지식은 깃들 곳이 너무 많아 사라지지 않았다.

폴 로머의 내생적 성장 이론은 그 결과를 정식화했고, 그는 이 연구로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아이디어는 비경합재(non-rival goods) 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사용해도 그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 비경합적 지식에서 수확체증이 생긴다면 피드백 순환은 끝없는 성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론대로라면 그래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럴까?


지금: 천장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아래 27킬로미터에 걸쳐 놓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 터널.

한 장의 엔진 도면에서 수천 명이 일하는 27킬로미터짜리 입자 가속기까지. 두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블룸 등의 논지를 보여준다. 아이디어는 갈수록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CERN)

2020년 니컬러스 블룸, 찰스 존스, 존 밴리넌, 마이클 웹은 ‘아이디어는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였다. 무어의 법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연구자 수는 1970년대 초보다 18배 이상 늘었다. 같은 비율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점점 더 큰 연구팀이 필요하다. 경제가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연구 투입을 약 13년마다 두 배로 늘려야 한다.

벤저민 존스는 그 메커니즘을 지식의 부담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연구자는 더 오래 훈련받고, 본격적인 연구를 더 늦게 시작하며, 더 좁은 분야를 파고들고, 더 큰 팀에서 일해야 한다. 지식의 최전선은 그저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을 교육해 그곳에 보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멀어진다. 모든 진보가 다음 진보를 더 어렵게 만든다.

세사르 이달고는 《정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2015)에서 이를 물리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경제 성장은 ‘결정화된 상상력’, 곧 제품 안에 구현된 지식이다. 아이폰이 가치 있는 까닭도 그 원자 배열에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원자 배열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이미 대부분 발견됐다. 남은 지식을 찾으려면 더 많은 사람과 시간, 더 정교한 협업이 필요하다.

두 힘이 경쟁한다. 하나는 로머가 말한 비경합성이다. 아이디어 하나가 다음 아이디어를 조금 더 쉽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지식의 부담이다. 진보할수록 다음 진보에 이르기는 더 어려워진다. 지금까지는 피드백 순환이 앞섰지만, 이제 어느 쪽도 우세하다고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 팽팽한 균형을 깨뜨릴 방법이 있을까?


다음: 새로운 무기

최근 두 저작은 그 답을 열역학의 언어로 설명하며 논의를 다시 슈뢰딩거에게 돌려놓는다.

《마지막 경제》 6장은 경제적 가치 창출이 모두 분류 행위라고 주장한다. 기업가는 맥스웰의 도깨비처럼 기능하며 시장의 혼돈 속에 엔트로피가 낮은 작은 영역을 만든다. 생물학적 지능은 고정된 인지 구조 안에서 약 20와트로 이 분류를 수행한다. 실리콘 지능의 상한은 에너지 투입량이 정한다. 스스로를 거듭 개선할 수 있고, 지식이 창조자와 함께 사라질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기능적으로 불멸에 가깝다.

자오이반은 이 생각을 시적이면서도 정밀하게 풀어낸다. 우주는 차갑고 무심하다. 생명의 과업은 에너지와 물질을 조직해 무심한 우주에 자신의 가치를 새기는 것이다. 공생, 다세포성, 신경계, 언어, 과학으로 이어진 진화적 진보는 모두 엔트로피에 맞서는 생명이 새로 획득한 수단이었다. 도구는 이 동맹이 생물학 바깥으로 뻗어 나간 결과다. 지식이 자신의 물리적 구현을 이어 가게 하는 정보라면, 모든 기술은 자신을 존속시키기 위해 물질을 동원하는 지식이다.

2025년 노벨위원회는 AI가 ‘명제적 지식과 처방적 지식 사이의 피드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모키르의 순환이 한층 가속되는 셈이다. 2024년 노벨 화학상은 AI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에게 돌아갔다. 이는 AI가 지식을 적용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최전선의 지식을 만드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어둠에 맞서는 것

한 걸음 물러나 전체 흐름을 보자.

35억 년 전 한 분자가 자신을 복제하기 시작하면서, 환경에 관해 축적된 정보인 지식이 우주에 등장했다. 화학 안에 암호화된 정보였다. 수십억 년 뒤 한 종이 아이디어 를 복제하기 시작했고, 지식은 유전자에서 문화로 도약했다. 문화는 취약하고 네트워크 규모에 의존하지만 유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3세기 전에는 이해와 기술이 하나의 피드백 순환으로 맞물렸고, 지식이 복리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순환은 생물학적 지능의 한계에 부딪혔다. 그 지식을 다음 단계로 옮길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식은 인과적 힘을 지닌 반엔트로피 구조다. 지식이 없었다면 생길 가능성이 극히 낮았을 새로운 물질 배열을 만들어 내는 물리적 배치다. 스마트폰, 백신, 유전체, 수학적 증명, 도시가 모두 그렇다. 각각은 그 안에 담긴 지식 덕분에 엔트로피에 맞서 유지되는, 질서가 응축된 작은 영역이다.

슈뢰딩거는 이것을 유기체 안에서 보았다. 위너는 메시지 안에서 보았다. 포퍼는 이론 안에서 보았다. 헨릭은 문화 안에서 보았다. 모키르는 제도 안에서 보았다. 로머는 경제 안에서 보았다. 도이치는 물리 법칙 자체의 구조 안에서 보았다.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우주는 무질서를 향한다. 지식은 그 흐름에 맞서는 힘이다. 35억 년 동안 처음에는 화학으로, 다음에는 생물학으로, 이어서 문화와 과학으로 맞서 왔다. 이제 우리 앞에는 새로운 질문이 놓여 있다. 어떤 시스템이 이 힘을 다룰 수 있는가? 그런 시스템은 경험을 어떻게 재사용 가능한 패턴으로 압축하고, 필요한 순간에 꺼내 세계 속에서 작동하게 하는가?

그 질문이 다음 글의 주제다.


물리학에서 지식이 하는 역할을 더 깊이 살펴보려면 도이치의 《무한의 시작》에서 출발할 만하다. 지식이 문명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모키르의 《아테나의 선물》과 헨릭의 《성공의 비밀》이 상세히 다룬다. 열역학적 관점은 《마지막 경제》 6장에서, 같은 생각을 시적으로 풀어낸 글은 자오이반의 〈우주, 생명, AI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