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이란 무엇인가?
창업자로 살아오며 나는 이 질문으로 자주 돌아왔다.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시간과 자원, 주의력, 그리고 삶의 상당 부분을 걸고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현실로 옮기는 일이다. 이만큼 큰 것을 걸고 나면 결국 방향을 묻게 된다.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 삶을 쏟았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게 될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약 3년 전부터 당연하게 여겨 온 믿음에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믿음은 특정한 사건에서 생겼고, 어떤 믿음은 관계와 보상, 나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해 왔다. 믿음은 그저 현실처럼 보였다.
이 사실을 깨닫자 주체성이라는 질문도 더 어려워졌다. 결정을 내리고 위험을 감수하며 끈질기게 일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할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전제들을 한 번도 살펴보지 않았다면, 내게는 과연 얼마만큼의 주체성이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주체성에 적어도 두 층이 있다고 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층은 뜻을 현실로 옮기는 실행의 주체성이다. 그 아래에는 뜻이 생겨난 믿음을 드러내고 검증하며 고치는 힘, 곧 믿음의 주체성이 있다.
믿음의 주체성이 먼저다. 행동은 우리를 멀리 데려갈 수 있지만, 어떤 방향을 가능하다고 여기고 무엇에 가치를 두며 어떤 선택지를 발견하는지는 믿음이 결정한다.
어떤 믿음은 나머지 믿음의 토대가 된다
믿음은 층위를 이룬다. 표면의 믿음은 더 깊은 믿음 위에 놓인다. “나는 금융업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에는 “돈이 곧 성공이다”가, 그 아래에는 다시 “남의 인정이 중요하다”가 있을 수 있다. 대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맨 위의 생각뿐이다.
내가 아는 뛰어난 창업자들은 빠르게 움직인다. 그보다 덜 눈에 띄지만 중요한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이 고정된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전제를 기꺼이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한때 성공에 보탬이 된 믿음이라도 더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그 변화를 알아챈다.
믿음의 주체성은 세 가지 활동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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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분명한 문장으로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것은 고칠 수 없다. 무엇을 사실로 전제하고 있는지 적어 보면, 믿음과 현실 사이에 처음으로 거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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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가 되는 믿음을 찾는다. 어떤 믿음은 주변부에 머물지만, 어떤 믿음은 세계관 전체를 떠받친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와 “내 미래는 내가 만든다”는 단순히 다른 의견이 아니다. 두 문장에서 출발하면 같은 세계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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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검증한다. 믿음에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관한 예측이 담겨 있다. 그 예측이 현실과 거듭 어긋난다면, 더 열심히 밀어붙이기 전에 믿음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
숨어 있는 가정은 행동의 경계를 정한다
들여다보기 가장 어려운 믿음은 더는 믿음처럼 느껴지지 않는 믿음이다. 경험과 보상, 환경이 같은 전제를 반복해서 강화하면 그 전제는 어느새 현실에 대한 단순한 묘사처럼 보인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본다. 영리하고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코딩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제품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성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떤 위험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어떤 회사가 존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전제를 한 번도 말로 분명히 해 보지 않았을 수 있다.
유능할수록 이런 전제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 전제가 일관된 행동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성공까지 뒤따르면 전제는 한층 더 강화된다. 모델 자체가 타당한지는 알지 못한 채, 그 모델 안에서 움직이는 솜씨만 좋아질 수 있다.
자신의 모델이 이미 불가능하다고 판정한 선택지는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다. 따라서 숨어 있는 가정은 노력이 시작되기도 전에 행동의 경계를 그어 버린다.
드러낸 믿음은 현실과 가치에 비추어 검증할 수 있다
믿음은 문장으로 꺼내 놓은 뒤에야 고칠 수 있다.
“원래 세상이 그렇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을 살펴보면 좋다. 그 말 뒤에는 아직 검토하지 않은 믿음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이 믿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떤 증거가 뒷받침하는가? 정반대가 참이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믿음이 보이기 시작하면 두 번째 질문이 생긴다. 그중 무엇을 남길 것인가? 목적 없이 믿음 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름을 붙인 적이 없더라도 모든 믿음 체계는 이미 어떤 결과를 다른 결과보다 낫다고 여긴다. 그 기준은 안정이나 자율성, 소속감, 봉사, 숙련, 돌봄, 창조일 수 있다. 가치는 방향을 정하고, 믿음은 그 방향으로 나아갈 행동을 그려 낸다.
“돈이 곧 성공이다”라는 믿음을 생각해 보자. 어떤 상황에서는 안정을 지키고 자율성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상황에서는 삶을 타인의 인정에만 맞추게 할 수 있다. 그 믿음 아래의 가치를 들여다보면 현실을 설명하는 틀을 고쳐야 하는지, 아니면 추구하던 기준 자체가 물려받은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믿음에는 두 가지 검증이 필요하다. 증거와 계속 맞아떨어지는가?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할 때 스스로 고른 가치에 가까워지는가? 동기를 준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에 관한 주장이 옳아지지는 않는다. “나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처럼 자신에 관한 실용적 믿음은 잠정적으로 채택한 뒤 행동으로 시험할 수 있다. 유용성은 실험해 볼 이유를 준다. 믿음이 현실과 맞는지는 그 결과가 판단한다.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내 관점 역시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임을 보여 준다. 보수적인 은행가와 아나키스트 예술가는 전혀 다른 전제 위에서도 각자 일관된 삶을 꾸릴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옳다는 증거는 아니지만, 당연해 보였던 삶의 방식이 사실은 여러 가능한 구성 가운데 하나였음을 드러낸다.
이제 행동으로 증거를 만들 수 있다. 하나의 믿음을 30일 동안 잠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참인 것처럼 행동해 보는 것이다. “나는 창의적이다.” “사람들은 나를 돕고 싶어 한다.” 그 믿음이 주의와 행동,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본다. 결과는 믿음을 강화할 수도, 적용 범위를 좁힐 수도, 어디에서 무너지는지 보여 줄 수도 있다.
어떤 믿음이 유용한지 묻기 전에, 그 믿음이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주체성은 가치와 행동을 끊임없이 맞추는 힘이다
믿음은 서로 맞물린 두 구조 안에서 힘을 얻는다.
믿음 → 인식 → 행동 → 결과 → 믿음의 수정
가치 → 어떤 결과를 추구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기준
첫 번째 구조는 피드백 순환이다. 결과는 다시 증거가 되어 믿음을 고치거나, 상황을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두 번째 구조는 이 순환에 방향을 준다. 왜 어떤 결과를 다른 결과보다 중요하게 여기는지 설명한다. 두 구조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느 하나의 화살표도 다음 단계를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예상보다 사용자가 적은 제품을 계속할지 고민하는 창업자를 생각해 보자. “좋은 제품이라면 사용자가 곧바로 몰려들어야 한다”라는 믿음 아래에서는 느린 성장이 거절로 보인다. “새로운 행동은 소수의 열성 사용자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라는 믿음 아래에서는 같은 수치가 재방문율을 살펴보라는 신호가 된다. 관찰한 숫자는 같지만 무엇을 보고, 어떤 설명을 그럴듯하게 여기며,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달라진다.
그다음 행동은 다시 얻게 될 증거를 바꾼다. 첫 번째 창업자는 제품을 접을 수 있다. 두 번째 창업자는 남아 있는 사용자를 인터뷰하고 다음 실험을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행동은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처음의 믿음을 판단할 재료가 된다. 믿음은 훗날 자신을 뒷받침하거나 흔들 증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치도 이 순환을 바꾼다. 빠른 확장을 추구하는 창업자와 오래 쌓아 갈 전문성을 중시하거나 작은 공동체에 깊이 기여하려는 창업자는 같은 증거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가치는 결정을 미리 정해 주지 않지만, 어떤 결과를 진전으로 볼지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현실과 가치, 행동을 맞추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토대가 되는 믿음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시도하고, 어디까지 버티며, 결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바꾼다. 결과는 믿음의 모델을 검증하고, 가치는 그 검증이 왜 중요한지 정한다. 성찰은 다음 행동에 앞서 둘을 다시 이어 준다.
실행의 주체성은 뜻을 세상으로 가져간다. 믿음의 주체성은 경험을 다시 받아들여 다음 뜻이 생겨날 틀을 고친다.
궁극의 주체성은 현실과 가치, 행동을 계속 맞춰 가는 능력이다. 현실을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믿는 힘이 아니다. 현실을 이해하는 틀을 고치고, 스스로 고른 가치에 비추어 다음 행동을 선택하는 일이다.
나는 무엇을 지키고 만들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믿음이 현실을 분명히 보고 그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돕는가?